과거와 현재의 교차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국어와 시험

과거와 현재의 교차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국어와 시험 

과거와 현재의 교차 

소설에서 과거와 현재의 교차는 
말 그대로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제시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사실 '과거와 현재의 교차'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소설의 서술은 대부분 과거 시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상대적 시제의 교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서술의 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시점을 현재로 보았을 때, 
그 시점과 과거의 교차라고 해야 정확하다. 

그러나 자칫 그래도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역순행적 구성을 소설을 '과거와 현재의 교차'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또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는 그래서 앞에 '수시로' 라는 수식어 붙는다.
시제의 교체가 빈번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설명을 아무리 해도, 예를 한 번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아마도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일 것이다. 2023 수능특강에도 그 일부로 수록되어 있긴 하다. 
다음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 보기 바란다.
 구보이 눈이 갑자기 빛났다. 참 그는 그 뒤 어찌 되었을꾸. 비록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추억을 갖는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또 기쁘게 하여 준다. 

동경의 가을이다. 간다(神田) 어느 철물전(鐵物墓)에서 한 개의 네일클리퍼(손톱깎기)를 구한 구보는 진보초(神保町) 그가 가끔 드나드는 끽다점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휴식을 위함도, 차를 먹기 위함도 아니었던 듯싶다. 오직 오늘 새로 구한 것으로 손톱을 깎기 위하여서만 인지도 몰랐다. 그중 구석진 테이블, 그중 구석진 의자. 통속작가들이 즐겨 취급하는 종류의 로맨스의 발단이 그곳에 있었다. 광선이 잘 안 들어오는 그곳 마룻바닥에서 구보의 발길에 차인 것. 한 권 대학 노트에는 윤리학 석 자와 ‘임(姙)'자가 든 성명이 기입되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죄악일 게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그만한 호기심은 허락되어도 좋다. 그래도 구보는 다른 좌석에서 잘 안 보이는 위치에 노트를 놓고, 그리고 손톱을 깎을 것도 잊고 있었다. 제1장 서론(緖論), 제1절 윤리학의 정의. 2. 규범과학, 제2장 본론, 도덕 판단의 대상. C동기설과 결과설, 예 1. 빈가(家)의 자손이 효양 (孝養)을 위해서 절도함. 2. 허영심을 만족기 위한 자선사업. 제2학기. 3. 품성 형성의 요소. 1. 의지필연론.. 그리고 여백에, 연필로, 그러나 수치심은 사랑의 상상 작용에 조력(助力)을 준다. 이것은 사랑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스탕달의 연애론, 의 일절, 그리고는 연락(連絡) 없이, 『서부전선 이상 없다.. 요시야 노부코(吉屋信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어제 어디 갔었 니. 라부파레드(러브 퍼레이드)'를 보았니...... 이런 것들이 씌어 있었다.

다료의 주인이 돌아왔다. 아 언제 왔소. 무슨 좋은 소식 있소. 구보는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와 단장을 집어 들고, 저녁 먹으러 나갑시다. 그리고 속으로 지난날의 조그만 로맨스를 좀더 이어 생각하려 한다.

다료(茶寮)에서

나와 벗과 대창옥(大昌屋)으로 향하며, 구보는 문득 대학 노트 틈에 끼어 있었던 한 장의 엽서를 생각하여 본다. 

물론 처음에 그는 망설거렸었다. 그러나 여자의 숙소까지를 알 수 있었으면서도 그 한 기회에서 몸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우선 젊었고 또 그것은 흥미 있는 일이었다.
소설가다운 온갖 망상을 즐기며, 이튿날 아침 구보는 이내 이 여자를 찾았다. 우입구 시래정. 주인집은 그의 신조사(新潮社) 근처에 있었다. 인품이 좋은 주인 여편네가 나왔다 들어간 뒤, 현관에 나온 노트 주인은 분명히...

그들이 걸어가고 있는 쪽에서 미인이 왔다. 그들은 보고 빙그레 웃고 그리고 지났다. 벗의 다료 옆, 카페 여급. 벗이 돌아보고 구보의 의견을 청하였다. 어때 예쁘지. 사실 여자는, 이러한 종류의 계집으로서는 드물게 어여뻤다. 그러나 그는 이 여자보다 좀더 아름다웠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엇 옵쇼. 설렁탕 두 그릇만 주... 

구보가 노트를 내어놓고, 자기의 실례에 가까운 심방(尋訪)에 대한 변해(辨解)를 하였을 때, 여자는 순간에 얼굴이 붉어졌었다. 모르는 남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은 까닭만이 아닐 게다. 

어제 어디 갔었니. 길옥신자(吉屋信子). 

구보는 문득 그런 것들을 생각해 내고, 여자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맞은편에 앉아 벗은 숟가락 든 손을 멈추고 빤히 구보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물었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생각의 비밀을 감추기 위하여 의미 없이 웃어 보였다.

좀 올라오세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였었다. 말로는 태연하게, 그러면서도 그의 볼은 역시 처녀답게 붉어졌다. 구보는 그의 말을 쫓으려다 말고 불쑥, 같이 산책이라도 안하시렵니까, 볼일 없으시면. 일요일이었고, 여자는 마악 어디 나가려던 차(次인)지 나들이옷을 입고 있었다.

통속소설은 템포가 빨라야 한다. 

그 전날, 윤리학 노트를 집어들었을 때부터 이미 구보는 한 개 통속소설의 작가였고 동시에 주인공이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여자가 기독교 신자인 경우에는 제 자신 목사의 졸음 오는 설교를 들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는 또 한 번 얼굴을 붉히고 그러나 구보가 만약 볼일이 계시다면, 하고 말하였을 때, 당황하게, 아니에요, 그럼 잠깐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여자는 핸드백을 들고 나왔다. 분명히 자기를 믿고 있는 듯싶은 여자 태도에 구보는 자신을 갖고, 참, 이번 주일에 무장야관도 구경하셨습니까.

그리고 그와 함께 그러한 자기가 하릴없는 불량소년같이 생각되고 또 만약 여자가 그렇게도 쉽사리 그의 유인에 빠진다면, 그것은 아무리 통속 소설이라도 독자는 응당 작가를 신용하지 않을 게라고 속으로 싱거웁게 웃었다.
그러나 설혹 그렇게도 쉽사리 여자가 그를 쫓더라도 구보는 그것을 경박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경박이란 문자는 맞지 않을게다. 

구보의 자부심으로서는 여자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족히 믿을 만한 남자로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총명하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여자는 총명하였다. 그들이 무장야관 앞에서 자동차를 내렸을 때, 그러나 구보는 잠시 그곳에 우뚝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뒤에서 내리는 여자를 기다리기 위하여서가 아니다. 그의 앞에 외국 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던 까닭이다.
구보의 영어 교사는 남녀를 번갈아 보고, 새로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웃고 '오늘 행복을 비오' 그리고 제 길을 걸었다. 그것에는 혹은 30 독신녀의 젊은 남녀에게 대한 빈정거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소년과 같이 이마와 콧잔등이에 무수한 땀방울을 깨달았다. 그래 구보는 바지 주머니의 수건을 꺼내어 그것을 씻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름 저녁에 먹은 한 그릇의 설렁탕은 그렇게도 더웠다.

검은 글씨로 표시된 부분의 시제와 빨간 글씨로 표시된 부분의 시제는 다르다. '다료'와 '설렁탕으로 이어진 서술의 시점을 현재로 본다면 나머지는 과거이다. 이렇게 제시된 것이 이른바 '과거와 현재의 교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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