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자화상' 분석

윤동주, '자화상' 분석 

윤동주의 '자화상' 분석

'자화상', 부끄러움과 내적 갈등의 해소 

자의적 자아, 현실적 자아, 그리고 이상적 자아 

윤동주의 시에서는 물론, 우리 인간의 자기 성찰을 생각할 때에 자아를 세 가지로 구별로 할 수 있다.

자의적 자아

인간은 자의식을 지닌 존재이다. 
그 자의식으로 자기를 성찰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성찰하며 이상적 자아를 생각하고, 그 이상적 자아를 찾아 실현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러한 자아를 자의식적 자아라고 한다.
윤동주의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자의식적 자아이다. 

현실적 자아 

자의적 자아에게 성찰의 대상이 되는 자아이다.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이루어나가는 자아가 현실적 자아이다.
윤동주의 작품에서 현실적 자아는 자신에게 매우 문제적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자아와 거리가 먼 모습이다. 
우리는 그것을 '내적 갈등', 혹은 '자아의 분열'이라고도 한다. 

이상적 자아

자의식적 자아가 찾고자 하며, 그로써 실현하고자 하는 자아이다. 
당연히 현실적 자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 
윤동주의 작품에서는 이상적 자아를 찾아 실현하려는 소망 혹은 다짐으로 '내적 갈등', 혹은 '자아의 분열'을 극복하고 있다. 

 '자화상' 텍스트 분석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은 자기를 비추어 보는 매개체, 즉 자기 성찰을 매개하는 자의식​을 상징한다.
'우물을 들여다' 보는 행위는 자기 성찰이다.
시적 자아는 자의식적 자아이고, 우물에 비친 것은 성찰의 대상이 되는 현실적 자아이다. 

'-ㅂ니다'는 작품 전체에서 반복되고 있다. 동일한 종결 어미의 반복이라고 한다.
운율의 형성에 기여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높임법, 혹은 경어체의 사용은 작품 전체에 자기 고백의 경건하고 절실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가만히' : 자기 성찰과 고백의 차분한 분위기를 또한 형성하고 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정경을 나열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자연의 정경은 뒤에서 제시될 현실적 자아의 모습과 대조된다. 
현실적 자아는 순수하지 못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지 못한 자신이다. 

'파아란 바람'은 공감적 심상이다.
'바람'은 촉각적 심상이되, '파아란'을 통해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연결어미 '-고'의 반복은 운율의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사나이' : 우물에 비친, 즉 자의식에 의해 성찰된 자신의 모습이다. 
현실적 자아의 모습이다. 

'나'라고 하지 않고 '사나이'라고 한 것을 우리는 '객관화'라고 말한다. 
즉 자신을 객관화하여 표현​했다는 의미이다. 

'객관화'를 다른 말로는 '대상화'라고도 한다. 

'미워져'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현이다. 

윤동주의 작품 세계를 참고할 때에 그에게 현실적인 자아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워져'는 그와 같은 '현실적 자아'에 대한 자책, 혹은 부끄러움의 표현인 것이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가엾어'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윤동주의 작품에서 자기 연민은 빈번하게 제시되어 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그리워집니다'에 그리움의 대상은 앞서 제시되었던, 미움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에서 그리워진 대상은 지금은 상실한, 순수했던 과거의 자아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상적 자아이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2연의 변주이다. 
변주란 반복 속에 변형을 준 것이다.

반복을 통해서는 강조의 효과를 주고 있고 변형을 통해서는 의미를 심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5연과 견주어 본다면,
5연에서의 '사나이가' 여기에서는 '추억처럼 사나이가'로 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점층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추억처럼' 있는 '사나이'는 바로 앞의 연에서 그리워졌던 순수했던 과거의 이상적 자아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외부로 표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와 같은 이상적 자아를 찾고자 하는 소망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자화상'의 갈등과, 자아의 분열, 그리고 자아와의 화해 

'자화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서는 미움, 가엾음, 그리움이다.
결국 자의식적 자아인 시적 화자는 그와 같은 복합적 정서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한편, 순수했던 이상적 자아를 상실하고 현재의 초라한 자기 모습으로 있는 것을 우리는 자아의 분열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대로 그와 같은 정서는 외부로 표출되어 있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이상적 자아의 실현에 대한 소망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내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자아와의 화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실 극복의 의지와 시적 표출 

윤동주의 시가 현실 극복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이 있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은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작품을 통해 표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시적 특징이다. 

윤동주의 '자화상', 극복의 의지, 시적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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